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벼 농사를 짓던 야요이 시대.쿠마모토 현 북부의 키쿠치 강 유역에서는 물을 끌어 쓰기 쉬운 강 주변의 평탄한 땅에서 벼 농사를 시작했다.
그 후 철제 농기구를 이용하여 생산성을 높였고, 벼 농사로 토지는 풍요로워져 갔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호화로운 부장품이 출토된 "에다 후나야마 고분"과 회화로 장식된 "치부상 고분"등에서 보여지는 것 처럼 다채롭고 화려한 장묘 문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윽고 높은 기술력이 뒷받침되어 키쿠치 강 유역 벼 농사 문화의 막이 올려졌다.
키쿠치 강 유역은 아소외륜산의 기쿠치 계곡이 원천지로,깨끗하고 미네랄을 많이 함유한 물이 풍족한 지역이다. 약 2000년 전 처음 작은 논에서 시작된 벼 농사는 관개 기술을 도입하여 8세기 경부터 대규모 토지 구획 제도인 "죠리제"가 전국적으로 시행 되었다. 고대 키쿠치 강 유역의 평지는 약 1ha(10,000 m2)의 논이 정비되었다.
또, 야마토 조정은 쌀이 풍부한 이 지역의 고지대에 고대 산성 "키쿠치성"을 축조하고, 쌀 창고를 만들어 군사 보급 기지로 사용하였다. 죠리제의 토지 구획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개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키쿠치 성터에 방문하면 천년이상 이어져 온 바둑판 모양으로 깔끔하게 구획된 전원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중세 이후 산간에서는 저수지 조성 및 수로 건설 등 농업 토목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 키쿠치 강 유역도 이데(용수로)를 정비하여 고지대까지 물을 끌어올려 논으로 바꾸었다.
에도 시대에는 측량 기술과 토목 기술이 더욱 향상되면서 각지에 장거리 이데가 만들어 졌다. 길이 11km의 "하루이데"는 총 454m의 마부(수로 터널)을 수작업으로 뚫어, 논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산지에 계단식 논을 만들고 벼 농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루이데"는 30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사용되고 있어 계단식 논의 물은 마를 날이 없다.
번소(감시와 경비를 위해 설치한 시설) 지구의 계단식 논은 가파르고 험한 산 비탈을 개척하여 돌을 쌓아 만들었고, 마을 안의 주택들도 돌을 쌓고 그 위에 회반죽과 진흙벽을 만드는 전통적 공법으로 지어졌다. 계단식 논을 비롯해 산촌의 자연과 낡은 가옥들이 늘어 선 조화로운 농촌 경관을 볼 수 있다.
근세 이후 해변에서는 제방과 배수로의 건설 기술이 발달하여 간척 사업으로 발전 했다. 키쿠치 강 하구에는 광활한 갯벌이 있었는데 이곳에 제방을 쌓고 조수를 막아 경작지를 만들었다. 그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졌다.
메이지 시대 중반에는 높이 3~6m로 쌓은 돌들이 5.2km나 이어져 당시 국내 최대급 "(구)타마나 간척 시설" 제방을 이루었고, 마침내 그 결과 면적 3,000ha의 경작지가 바다로 부터 탄생했다. "바다의 만리장성"라고도 불리는 이 제방은 성의 돌담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사람을 압도하고, 가을 수확 때에는 황금물결의 벼 이삭과 돌로 만든 제방이 아름답게 대조를 이룬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키쿠치 강가의 늪지에서는 키쿠치 시 출신의 농업 기술자인 토미타 진페이가 개인의 재산을 털어 수확기가 되어도 배수가 불량하여 물을 빼지 못하는 논을 마른 논으로 바꾸는 암거 배수 기술을 개발했다. 더 나아가 배수가 불량한 논에서 빼낸 물을 무논에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가뭄 대책도 연구해 이 기술들을 전국에 퍼뜨렸다.
키쿠치 강은 논에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쌀을 수송하는 일에도 빼 놓을 수 없었다.
11세기경부터 450년의 역사 가운데 키쿠치 가문이 큐슈를 평정했던 한 때, 키쿠치 강을 이용해 쌀을 수송하는 것으로 재산을 쌓고, 안정적인 통치를 하여 벼 농사 발전에 기여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서 키쿠치 강 수송은 더욱 더 중요해 졌다. 키쿠치 강 아래로 내려가면 돌담으로 만들어진 "타카세 선착장 유적"이 보이는데, 키쿠치 강 유역의 공물로 드려질 쌀을 모아 "타와라 코로가시"라 불리는 석조 사면을 사용해 배에 싣고 오사카 등으로 옮겼다.
에도 시대, 키쿠치 강의 선착장과 "부젠 도로"가 교차하는 야마가 온천 마을은 쌀 도매상과 누룩가게(코지야), 주조장, 쌀 과자 집 등 쌀을 사용하는 상점이 줄지어 늘어서 번성했었다. 지금도 주조장과 누룩가게 등이 장사를 계속하고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쌀 도매상과 주조장 등으로 재산을 축적한 상인들이 출자하여 세운 메이지 시대의 연극 공연장 "야치요 좌"도 옛 영광을 끊임없이 이어 와, 여전히 많은 가부키 배우나 현지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날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키쿠치 강 유역에는 밭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다양한 축제와 풍습이 전해져오고 있다. 정월 대보름 무렵, 아이들은 논둑을 허물어 두더지를 쫓았고, 모내기 전에는 기우제 춤을 추어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늦여름에는 풍진제를 올려 벼가 태풍으로 쓰러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수확 후 가을 이후에는 대제사를 지내 결실에 감사 드리고, 신에게 봉헌하는 춤을 춰 내년의 오곡 풍요를 빌었다.
또 이 지방에 전해져오는 음식으로는 키쿠치 강의 최종 도착지인 아리아케 해에서 잡은 신선한 전어(코노시로)로 만든 초밥 "코노시로 마루즈시"와 키쿠치 강에서 잡은 참게의 내장이 잘 버무려진 "가네메시"등 지역의 식재료와 조화를 이루는 쌀 산지만의 요리가 남아 있다.
이 지방의 전통 술 "아카자케"는 보존을 위해 초목 태운 재를 넣는데, 이 때 색이 변화하여 그 이름처럼 붉은 빛을 띄는 술이 된다. 강한 단맛이 특징으로, 에도 시대에는 번의 술로써 막부에 헌상 되었다. 옛날에는 축제나 기쁜일 일이 있을 때 마셨지만, 지금은 정월에 도소주(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마시는 술)로써도 빠지지 않는다.
고대부터 끊임없이 계속해 온 벼 농사는 에도 시대 때 "천하 제일의 쌀"이라 불리는 히고(지금의 쿠마모토 현의 옛 이름)쌀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장군 공양미(신불에게 바치는 쌀)로 이 쌀이 이용했고, 오사카에서는 눈부신 활약을 한 사람이나 요코즈나에게 축하하는 의미로 "히고쌀 진상"이라는 팻말을 달아 보낼 정도였다. 키쿠치 강 유역은 지금도 전국에서 최고 순위로 평가 받는 일본 유수의 곡창 지대이다.
이처럼 키쿠치 강 유역은 2000년간 벼 농사를 지켜온 선조들의 지혜와 열정으로 평지에는 고대의 죠리, 산간에는 중세 이후의 이데(용수로)와 계단식 논, 해변에는 근세 이후의 간척, 그리고 늪지대에는 근대의 암거 배수 시설을 개발해 토지 이용을 확대 시켰고, 이 대지에는 지금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이곳에 오면 이러한 광경을 한자리에서 한 눈에 볼 수 있고, 더불어 흥이 넘치는 축제와 풍부한 음식들을 체험하며, 쌀 생산과 관련된 무형 문화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키쿠치 강 유역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 벼 농사 문화의 축소판이자, 일본의 벼 농사의 문화적 경관과 그것에서 비롯된 연예와 음식 문화를 만날 수 있는 희귀한 장소이다.